17장 8-16 절

 17 8-16  

8-9.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וַיָּבֹ֖א עֲמָלֵ֑ק וַיִּלָּ֥חֶם עִם־יִשְׂרָאֵ֖ל בִּרְפִידִֽם׃

 וַיֹּ֨אמֶר מֹשֶׁ֤ה אֶל־יְהֹושֻׁ֨עַ֙ בְּחַר־לָ֣נוּ אֲנָשִׁ֔ים וְצֵ֖א הִלָּחֵ֣ם בַּעֲמָלֵ֑ק מָחָ֗ר אָנֹכִ֤י נִצָּב֙ עַל־רֹ֣אשׁ הַגִּבְעָ֔ה וּמַטֵּ֥ה הָאֱלֹהִ֖ים בְּיָדִֽי׃

 

르비딤에서 생수가 반석으로 부터 나와서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는데, 갑자기 아말렉이 등장한다. 생수가 나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로 부터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되신 것이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며, 율법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516-17절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1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사도행전 15 1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율법주의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려는 율법주의자들인 것이다. 

아말렉은 어떤 부족이지만, 오늘날에는 육체로부터 나타나는 옛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신명기 2517-19절에서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 모습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것과 대조하면 이해가 된다. 로마서 719-25절에서『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사도바울이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호수아가 예수라는 말이다.

 

10-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라함)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타마크)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וַיַּ֣עַשׂ יְהֹושֻׁ֗עַ כַּאֲשֶׁ֤ר אָֽמַר־לֹו֙ מֹשֶׁ֔ה לְהִלָּחֵ֖ם בַּעֲמָלֵ֑ק וּמֹשֶׁה֙ אַהֲרֹ֣ן וְח֔וּר עָל֖וּ רֹ֥אשׁ הַגִּבְעָֽה׃

וְהָיָ֗ה כַּאֲשֶׁ֨ר יָרִ֥ים מֹשֶׁ֛ה יָדֹ֖ו וְגָבַ֣ר יִשְׂרָאֵ֑ל וְכַאֲשֶׁ֥ר יָנִ֛יחַ יָדֹ֖ו וְגָבַ֥ר עֲמָלֵֽק׃

 וִידֵ֤י מֹשֶׁה֙ כְּבֵדִ֔ים וַיִּקְחוּ־אֶ֛בֶן וַיָּשִׂ֥ימוּ תַחְתָּ֖יו וַיֵּ֣שֶׁב עָלֶ֑יהָ וְאַהֲרֹ֨ן וְח֜וּר תָּֽמְכ֣וּ בְיָדָ֗יו מִזֶּ֤ה אֶחָד֙ וּמִזֶּ֣ה אֶחָ֔ד וַיְהִ֥י יָדָ֛יו אֱמוּנָ֖ה עַד־בֹּ֥א הַשָּֽׁמֶשׁ׃

 

아말렉이 들어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야솨의 합성어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손이 내려가면은 손이 "쉬면"이다. 쉰다는 말이다. 여호와의 지팡이(권능)가 쉰다는 것이다. 영적인 전쟁은 기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늘의 것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는 여호수아가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것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면 성도는 땅의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옛사람의 모습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옛사람은 아니지만, 옛속성이 새사람이 된 성도를 괴롭히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프로슈케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프로슈케 기도는 주기도문과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복을 비는 기도는 옛사람의 등장을 촉구하는 기도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모세는 산(하늘)에서, 여호수아는 땅에서 전쟁을 한다. 모세의 손은 하나님의 손을 상징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이사야 6312절에서『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에무나 אֱמוּנָ֖ה) 올렸더니(타마크תָּֽמְכ֣)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이사야 421절에서『내가 붙드는(타마크)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시편 4211절에서『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타마크)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에무나는 믿음으로 라는 의미다. 그의 손이 믿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의 손으로 되었지만, 모세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의 손은 육체적 한계로 내려올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보조 인물로 아론과 훌이라는 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피곤할 떼 붙드는 것은 인간의 손이 내려오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이게 에무나(믿음)이라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그 믿음인 것이다.

 

13-14.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וַיַּחֲלֹ֧שׁ יְהֹושֻׁ֛עַ אֶת־עֲמָלֵ֥ק וְאֶת־עַמֹּ֖ו לְפִי־חָֽרֶב׃ פ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כְּתֹ֨ב זֹ֤את זִכָּרֹון֙ בַּסֵּ֔פֶר וְשִׂ֖ים בְּאָזְנֵ֣י יְהֹושֻׁ֑עַ כִּֽי־מָחֹ֤ה אֶמְחֶה֙ אֶת־זֵ֣כֶר עֲמָלֵ֔ק מִתַּ֖חַת הַשָּׁמָֽיִם׃

 

에베소서 613-18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칼날은 입의 칼이다. 말씀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다. 책에 기록한 것이 모세오경(율법)이다. 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아말렉을 쳐서 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것은 하나가 되는 자만 들리게 된다. 성령에 의해 마음에 기록된 것이다. 율법이 완성된 자만 아말렉을 이긴 자이고, 다시는 율법으로 그들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이 필요없는 것이다. 

 

15-16. 모세가 단(미즈베아흐)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וַיִּ֥בֶן מֹשֶׁ֖ה מִזְבֵּ֑חַ וַיִּקְרָ֥א שְׁמֹ֖ו יְהוָ֥ה׀ נִסִּֽי׃

 וַיֹּ֗אמֶר כִּֽי־יָד֙ עַל־כֵּ֣ס יָ֔הּ מִלְחָמָ֥ה לַיהוָ֖ה בַּֽעֲמָלֵ֑ק מִדֹּ֖ר דֹּֽר׃ פ

 

사무엘상 17 47절에서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적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 라는 정체성을 잘 깨달아야만 한다.

율법주의와 복음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미즈베아흐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단이다. 짐승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리는 제단을 의미한다. 여호와 닛시는  깃발, 표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수기 21장에서는 장대에 달린 놋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닛시는 그런 개념이다. 놋뱀을 바라보면 낫는다는 것이 믿음이다.

창세기 22 9절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여기에서도 단이라는 말이 미즈베아흐이다. 이삭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율법과의 전쟁은 대대로 이어지며, 하나님이 직접 성도의 심령 속에서 싸우시는 것이다. 결국 생명나무(복음)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와의 싸움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율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나무는 복음으로서 오직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의를 이룰 수 잇다는 말씀이다. 이게 항상 마음 속에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자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다.  율법주의자들은 규칙을 강조한다. 무엇인가 규칙을 정해서 행하도록 하고 그것이 의의 길로 가는 길인 것처럼 말한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고, 십일조를 반드시 해야하고, 주일성수를 반드시 해야하고 하는 등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규칙을 지킨다고 마음까지 변화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율법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자만이 마음의 변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옛사람은 율법을 원한다. 그러나 성도의 새사람은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나아간다.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지켜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전쟁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옛사람)을 진멸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댓글